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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갈 때 하루 1억 넘게 벌었는데 "지금은 모아놓은 돈이 아예 없다는" 개그맨

코미디언의 꿈을 키우다: 무명 시절 6년

 

📌 심현섭은 6년 동안 무명 생활을 거친 후 연예계에 이름을 알렸다.

 

심현섭은 1990년대 초반,
코미디언이 되기로 결심하고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6년간 무명 시절을 버티며
개그맨으로 이름을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연예인이 되어야 했다.


'사바나의 아침'으로 인생 역전

 

📌 '사바나의 아침'을 통해 심현섭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가 됐다.

 

1999년, KBS '개그콘서트' 코너 '사바나의 아침'에서
번개 맞은 추장 역할로 대박을 터뜨린 심현섭.


독특한 분장과 유쾌한 연기로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으며 단숨에 스타가 되었다.

이후 '봉숭아 학당' 2대 맹구 역할까지 이어지면서
심현섭은 '국민 개그맨'으로 자리 잡았다.


하루 17개 스케줄, 1억 원 이상 수익

 

📌 전성기에는 하루 17개 스케줄을 소화하며 1억 원이 넘는 수익을 기록했다.

 

심현섭은 전성기 시절 하루에 라디오, 행사, CF 촬영,
결혼식 사회, 나이트 MC 등 무려 17개 스케줄을 소화했다.


그렇게 하루에만 1억 2천만 원이 넘는 수익을 기록했다.

그가 말하길,
"당시 압구정 현대아파트 한 채 가격이 1억 8천만 원이었다"고 회상했다.


모든 돈은 어머니의 빚 갚는 데 사용

 

📌 어머니가 진 15억 8천만 원의 빚을 갚기 위해 번 돈을 모두 썼다.

 

심현섭이 그토록 돈을 벌어야 했던 이유는
어머니의 빚 때문이었다.
아버지 심상우 의원이 아웅산 묘소 테러로 세상을 떠난 후,
집안은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다.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사업을 벌였지만,
1991년 사기를 당해 15억 8천만 원의 빚을 지게 된다.
현재 가치로 약 150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였다.

심현섭은 자신이 번 돈을 모두 가족 빚을 갚는 데 사용했다.


그래서 하루에 3억을 벌어도 저축은커녕 남는 게 없었다고 한다.


포기하지 않은 끝에 빚 청산

 

📌 약 7년간 노력 끝에 가족의 빚을 모두 갚아냈다.

 

심현섭은 방송과 행사, 광고까지 닥치는 대로 일하며
약 7년 만에 가족의 15억 8천만 원 빚을 모두 청산했다.

 

그는 "빚을 다 갚았을 때 기분이 어땠냐"는 질문에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해냈다는 것에 감사했다"고 답했다.


방송 활동 중단, 어머니 병간호에 집중

 

📌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2000년대 중반, 심현섭은 방송 활동을 점점 줄이게 된다.
그 이유는 어머니의 긴 병간호 때문이었다.

 

12년 동안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야 했기에
연예인으로서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나는 끝까지 함께했다"고 회상했다.


결혼 시기를 놓친 심현섭

 

📌 병간호에 집중하느라 결혼 시기를 놓치게 되었다.

 

어머니를 돌보는 동안 심현섭은 자신의 삶을 미뤄야 했다.
결국 그는 결혼 시기를 놓치고
50대 중반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후회는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 당시 나에겐 가장 소중한 선택이었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인연, 11살 연하 연인과의 만남

 

📌 현재는 11살 연하의 여자친구와 결혼을 준비 중이다.

 

심현섭은 최근 TV조선 '조선의 사랑꾼'에 출연해
11살 연하의 연인 정영림 씨와의 사랑을 공개했다.


둘은 소개팅을 통해 만났으며,
심현섭은 부모님 산소가 있는 국립현충원에서
프러포즈를 하며 진심을 전했다.

 

정영림 씨는 심현섭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이며
결혼을 약속했다.